“세금 없는 천국은 없다.” 최근 G20과 OECD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Global Minimum Corporate Tax)’ 도입 움직임은 단순한 조세 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 흐름과 기업의 투자 전략, 국가의 경제 정책까지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화입니다. 특히 2024년부터 15%의 최저 법인세율이 적용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세율 인하를 무기로 외국 기업을 유치하던 국가들의 경쟁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한국은 비교적 높은 법인세율(최대 25%)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로서,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글로벌 대기업들과 국내 다국적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배경,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합니다.
다국적 기업 중심의 세부담 구조 변화
글로벌 최저 법인세 제도는 주로 대규모 다국적기업이 세율이 낮은 국가로 법인을 옮겨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제도입니다. OECD와 G20이 추진하는 이 정책은 연 매출 7억5천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의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이들이 어느 나라에서 수익을 올리든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담하도록 규정합니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싱가포르, 룩셈부르크 등 기존의 저세율 국가를 활용해 절세 전략을 펼치던 기업들은 전략을 수정해야 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한국 대기업들도 글로벌 자회사를 통해 다양한 국가에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법인의 실효세율이 15% 미만일 경우 한국 본사에서 추가로 ‘차액 세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기존의 ‘저세율 활용 전략’을 무력화하며, 회계, 재무, 법무 등 여러 부문에서 복잡한 조세 대응이 불가피해집니다. 또한 기업들은 기존에 누리던 법인세 인센티브나 감면 혜택의 실질적 효용이 줄어들면서, 투자 수익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게 됩니다.
한국의 법인세 구조와 세수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로 글로벌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며,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실질적으로 20% 이상의 세율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로 볼 때, 글로벌 최저 법인세가 도입되어도 한국 기업에 큰 세율 인상 부담은 없지만, 반대로 해외에서의 조세 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 본사에 추가적인 세금 납부 의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세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건전성 확보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세수 증가가 기업의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고, 해외 진출 전략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제조업 기반의 다국적기업이나 글로벌 ICT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저세율 국가에 두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높여왔기 때문에, 세 부담이 커지면 투자지 변경, 사업구조 재조정, 비용 통제가 필수적으로 뒤따릅니다. 아울러 조세 회피국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일부 지역(예: 케이먼 제도, 버진아일랜드 등)을 활용하던 금융·IT기업들도 해당 지역의 법인이 의미가 없어질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본사 회귀 또는 재배치 전략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즉, 글로벌 법인세 조정은 단순히 세금 문제를 넘어 투자 전략과 경영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됩니다.
해외투자 전략과 회계 정책의 전면 재조정 필요
글로벌 최저 법인세가 본격 도입되면, 한국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경영 전략 재조정이 불가피합니다. 첫째, 해외 자회사 및 지점의 실효세율을 면밀히 분석하고, 15% 미만일 경우 추가 납부해야 할 세금을 사전에 파악하는 조세 계획이 필요합니다. 둘째, 세금 회피보다는 실질적인 현지 사업 성과에 기반한 글로벌 전략이 강조되며, 이는 ‘세율 유리성’보다 ‘시장 접근성’과 ‘운영 효율성’ 중심의 투자 판단을 촉진할 것입니다. 셋째, 회계 및 공시 체계의 투명성 강화가 요구됩니다. OECD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자회사별 수익, 세율, 소재국 정보를 정확히 공개해야 하며, 이는 기업의 IR(투자자 커뮤니케이션)과 ESG 리스크 관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넷째, 다국적기업 간 합병·인수(M&A) 전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세제 혜택이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면, 앞으로는 통합 후 실효세율에 따라 구조를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일부 기업은 국내 복귀(re-shoring) 또는 제3국으로의 법인 이전을 고려할 수 있으며, 이는 국가 차원의 산업 정책과 맞물려 전략적 유치 경쟁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글로벌 최저 법인세는 기업들에게 ‘세금 중심’이 아닌 ‘사업 실질 중심’의 전략 전환을 강제하는 글로벌 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는 더 이상 국제사회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도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에 대한 수동적 대응을 넘어서, 조세 전략과 사업 전략을 통합적으로 재설계함으로써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준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