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더 이상 단순한 전자부품이 아닙니다. 디지털 경제의 ‘쌀’이자,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두 기업, 바로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입니다. 이 두 기업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기술력과 고객, 투자 규모, 심지어 정부의 전략적 지원까지 동원된 전방위적 대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업 간 경쟁을 넘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가 간 공급망 전쟁과도 얽혀 있는 삼성과 TSMC의 경쟁 구도는 현대 산업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대결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삼성과 TSMC의 경쟁 구도를 파운드리 기술, 지정학, 공급망 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기술 격차와 경쟁 구도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왔습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TSMC는 약 55%를 차지하며, 삼성전자는 약 13~15%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특히 TSMC는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등 주요 팹리스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신 3나노 이하 공정에서도 생산 수율과 품질 측면에서 경쟁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글로벌 1위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수율과 고객 대응력 면에서 지속적인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TSMC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평택, 미국 텍사스 등지에 대규모 파운드리 시설을 증설하고 있으며, 2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두 기업의 경쟁은 단순한 점유율 싸움이 아니라, 차세대 AI 칩, 모바일 AP, 고성능 서버칩 등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전방위 경쟁입니다. 특히 3D 구조,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 등 공정 혁신 경쟁이 격화되며, 기술력과 생산능력 모두에서 우위를 점한 쪽이 글로벌 IT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반도체의 국가 전략 자원화와 지정학적 변수
삼성과 TSMC의 경쟁은 단지 민간 기업의 영역을 넘어서 국가 안보와 산업 전략의 핵심 사안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 'CHIPS and Science Act'를 제정하고 삼성과 TSMC를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TSMC는 애리조나에 3개 이상의 첨단 팹을 건설 중이며, 삼성도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투자한 공장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자산으로 반도체가 부상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지정학적 안정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편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SMIC와 YMTC 등 자국 기업에 대대적인 지원을 쏟아붓고 있으나, 아직 기술 격차가 큰 상황입니다. 미국은 첨단 장비 수출 제한, ASML의 EUV 장비 통제 등으로 중국의 추격을 봉쇄하고 있으며, 이는 곧 삼성과 TSMC 같은 선두 기업의 전략적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TSMC는 대만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존재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한미동맹이라는 외교 기반 속에서 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공급망 안정성과 고객 포트폴리오의 차이
두 기업의 또 다른 경쟁력 차이는 고객 기반과 공급망 전략에 있습니다. TSMC는 팹리스 고객사들과의 ‘전담 파운드리’ 개념을 일찍이 도입해, 고객 맞춤형 생산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왔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자체 제품군이 많아, 외부 고객 입장에서 ‘경쟁자에게 생산을 맡긴다’는 부담이 존재했습니다. 이는 고객 유치의 제한 요소가 되었으며, 파운드리 비즈니스의 확장에 장애물로 작용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삼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파운드리 부문 독립성과 고객 지원 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엔비디아, 테슬라, IBM 등과 협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급망 측면에서 TSMC는 특정 지역(대만)에 생산이 집중된 반면, 삼성은 한국, 미국, 중국 등에 분산된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 강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고객 입장에서 안정성과 유연성을 중시할 때 삼성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승부는 단순히 공정 기술력뿐 아니라, 고객과의 신뢰 관계, 생산 속도, 수율 안정성, 그리고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복합적으로 결정짓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삼성과 TSMC의 경쟁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방향성을 좌우할 ‘대결의 경제학’입니다. 기술, 외교, 공급망, 자본이 총동원된 이 경쟁 속에서, 누가 미래의 데이터 경제를 지배할 것인가는 단지 기업의 승패를 넘어 국가와 산업 전반에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