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열정이 보상’이라며 정당한 대가 없이도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며 이런 ‘열정페이’ 관행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경험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저임금 혹은 무급 노동을 요구하는 구조가 남아 있으며, 특히 문화예술계, 스타트업, 스포츠 산업, 디자인 업계 등에서는 지금도 형태만 달라졌을 뿐 유사한 착취가 존재합니다. ‘열정페이’는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 노동권, 세대 갈등, 기업 윤리, 사회구조와 얽힌 복합적인 현상입니다. 이 글에서는 열정페이의 정의와 실제 사례, 법과 제도의 한계, 그리고 인식 전환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청년 노동 착취로 이어지는 열정페이 실태
열정페이란 정당한 노동의 대가 없이, 혹은 터무니없이 낮은 보수로 노동을 시키는 관행을 말합니다. 주로 처음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층이나 인턴, 프리랜서, 계약직 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발생합니다. “경험을 쌓아야지”, “네가 원해서 한 거잖아”라는 말로 시작된 무급 인턴십은 이후에도 반복적인 야근, 계약 외 업무, 초과 근무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예술, 연극, 방송, 출판 등 문화 관련 업계에서는 여전히 “꿈을 이루려면 감내해야 할 과정”이라는 식으로 포장되며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2023년에 발표한 청년 근로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청년의 약 27%가 ‘임금 미지급 또는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그중 상당수가 비정규직, 인턴, 외주 근로자였습니다. 심지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자원봉사나 교육 과정으로 둔갑되는 경우도 많아, 청년들이 자존감 하락과 동시에 노동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정규직 진입’을 위한 전단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결국 열정페이는 청년층에게 구조적 착취로 작용하며, 단기적 손해 이상의 장기적 불이익을 안겨줍니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 왜 막지 못하는가?
열정페이의 가장 큰 문제는 법적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근로계약’이 존재해야 법적 보호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많은 열정페이 사례는 계약서조차 없이 시작되며, ‘교육생’, ‘인턴’,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법적 근로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공식 노동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임금 체불, 과도한 업무, 퇴직금 미지급 등 각종 문제에 노출되어도 구제받기 어렵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감독의 부족입니다. 고용노동부가 모든 사업장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는 열정페이가 ‘업계慣例’처럼 지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프리랜서 시장은 고용 형태가 유연한 대신 보호 장치는 부족한 구조라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하려 해도, “경력에 불이익이 갈까 봐” 혹은 “다시는 그 업계에 발을 못 들일까 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피해자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저임금·무급 노동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변주되며 살아남고 있습니다.
인식 전환과 노동권 확산 가능성
그렇다면 열정페이는 정말로 사라질 수 있을까요?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선 MZ세대를 중심으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한 만큼 받겠다”, “워라밸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더 이상 회피나 회피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노동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열정페이 공론화’ 사례가 많아지면서 기업 이미지가 타격을 입고, 사회적으로 불매 운동이나 고발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도 ‘청년 노동권 보호’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부 지자체에서는 인턴십 운영 기업에 대한 인증 제도, 교육 중심 활동에 대한 임금 지급 의무화, 노동 교육 확대 등이 시행 중입니다. 그러나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입니다. 이제는 “그래도 경험이 되잖아”라는 말보다, “노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명제가 더 보편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조직과 기업은 결국 사람을 잃고, 경쟁력을 잃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즉, 열정페이를 단지 ‘청년의 문제’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 문화와 연결된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열정이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강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열정은 정당한 대가와 함께할 때 빛을 발합니다. 더 이상 ‘열정페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한 노동이 폄하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인식하고 행동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