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다가오는 직원의 임금을 줄이고 그만큼 고용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 한때 고령자의 고용 안정 방안으로 주목받았던 이 제도는 이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려던 이상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형식적인 고용 연장”, “세대 간 임금 갈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는 과연 세대 간 배려의 제도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세대 갈등의 촉매제일까요? 이 글에서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배경과 구조, 실효성, 그리고 청년층과 고령층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 봅니다.
세대 갈등을 키우는 임금 구조 문제
임금피크제가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지점은 ‘세대 간 임금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인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 속에서 고령 근로자는 나이가 들수록 급여가 상승하고,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커집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임금피크제인데, 정작 이 제도는 고령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일자리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업무량은 줄지 않은 채 보상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며, 당사자인 고령 근로자에게도 불만을 야기합니다. 동시에 청년층은 ‘고령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며, 실질적인 일자리 세대교체가 지연된다는 불만이 커집니다. 결국 임금피크제가 본래 취지와 달리 세대 간 ‘양보’가 아닌 ‘대립’ 구도로 변질되는 구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특히 노동시장이 정체되거나 불황일 경우, 청년과 고령층 모두 임금과 고용 안정성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닌, 한국 노동시장 전반의 임금 체계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된 갈등입니다.
고령자 고용 안정 효과와 기업 입장
임금피크제는 분명 고령 근로자의 고용 연장을 촉진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이후에도 임금피크제를 통해 고령 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조직의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전면적인 구조조정보다는 임금 조정으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용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경영이 불안정하거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경우,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관리할 수 있는 대안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임금피크제가 단순히 ‘임금 삭감용’으로만 기능하게 될 경우입니다. 명확한 직무 재설계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줄이면, 고령 근로자의 동기 저하와 직무 효율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정년 보장+임금 감소’라는 조건이 현실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고용 연장의 의미가 퇴색되고 단지 ‘형식적 고용 유지’에 그치게 됩니다. 결국 제도의 성공 여부는 ‘고령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 있으며, 임금만 조정하고 역할은 그대로인 구조라면 장기적으로는 기업에도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연계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
임금피크제가 또 하나의 비판을 받는 이유는 ‘청년 고용 창출’이라는 목표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부와 일부 기업은 “고령자의 임금을 줄이면 그만큼 청년 채용 여력이 생긴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 고령자의 임금 감소가 자동적으로 신규 인건비로 재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업은 줄어든 비용을 신규 채용보다는 자체 수익 개선이나 비용 절감으로 흡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고령 인력의 고용 연장이 물리적으로 자리를 점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신규 채용 자체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청년 일자리는 단순히 수치상의 일자리가 아니라, ‘질 높은 경력 개발형 일자리’여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자금으로 단기 계약직이나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면, 청년 고용의 질적 개선으로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임금피크제는 세대 간 상생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세대 간 양보 경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장기적으로 청년 고용을 늘리려면,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구조 혁신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자와 청년, 기업 모두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복합적 제도입니다. 지금은 단순히 ‘배려냐 갈등이냐’의 프레임을 넘어서, 임금 구조와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개편 없이 임시방편으로 사용된 결과가 문제의 본질입니다. 앞으로는 제도의 설계뿐 아니라 ‘세대 간 공존을 위한 노동환경’이라는 더 큰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