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과 주거비 부담이 심화될수록 이 문장이 더 자주 회자됩니다. 주택을 단순히 자산이 아닌 삶의 기반으로 보자는 의미이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오랫동안 ‘투자 자산’이자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내 집 마련은 단순한 거주 목적을 넘어 사회적 성공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금리 상승, 부동산 가격의 고점 인식, 세대 간 인식 차이, 정부 정책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최근에는 ‘사는 곳’으로서의 집에 대한 관심과 가치가 점차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집’이라는 개념의 변화가 경제와 정책, 사회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합니다.
소유 개념에서 거주 개념으로의 전환
한국의 주거 문화는 오랫동안 소유 중심이었습니다. 1980~9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 아래 주택 구매는 최고의 재테크로 인식되었고, 자산 축적의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 흐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부동산 가격 상승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자산으로서의 수익 기대감이 낮아졌습니다. 둘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유보다 경험’, ‘가성비보다 가치 소비’라는 문화가 자리잡으며, 집을 꼭 사야 한다는 강박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셋째, 임대 시장의 다양화로 장기 거주가 가능한 민간임대, 공유주택 등이 등장하면서 주거의 선택지가 늘었습니다. 이에 따라 '사는 곳'으로서의 집의 가치는 단순히 면적이나 입지가 아닌, 삶의 질, 커뮤니티, 생활 편의성 등 비경제적 요소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내 집 마련에 대한 선호는 높지만, 그 목적이 ‘투자’에서 ‘삶의 안정’으로 전환되는 추세는 분명한 흐름입니다.
정부의 실거주 중심 정책과 그 한계
정책 측면에서도 ‘사는 집’에 초점을 맞춘 실거주 중심의 방향성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애최초 특별공급 확대,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 실거주 요건 완화 등은 모두 무주택자의 실거주를 유도하고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과열을 반성하며 정부는 ‘내 집은 내가 살기 위한 곳’이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주택 시장의 투기적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실제 시장에서 효과를 거두는 데에는 여러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주택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실거주자라 하더라도 집을 구하기 어려운 구조가 여전합니다. 둘째, 전세 제도의 불안정성, 임대차 시장의 가격 급등 등은 실거주 중심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킵니다. 셋째, 자산 형성 수단으로 주택 외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는 집’을 ‘사는 자산’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정책적 메시지와 시장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며, 실거주 중심의 가치관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과 장기적 주거 안정망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집의 자산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인식 변화
집이 자산화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거 양극화입니다. 같은 도시에 살더라도 보유 여부, 지역,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삶의 질이 급격히 달라지는 현상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막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또한 ‘집값 상승=성공’이라는 공식이 사회 전반에 내재화되면서, 주거 공간이 더 이상 편안한 쉼터가 아닌 불안과 스트레스의 공간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특히 MZ세대와 청년층은 집을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출산율 하락, 소비 위축, 이주 욕구 증가 등 다양한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집은 사는 곳이다’라는 개념은 단순한 감성적 표현이 아닌,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경제적 구조 문제에 대한 대안적 사고로 해석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 변화는 부동산 정책뿐 아니라 금융, 복지, 도시계획 등 전반적인 시스템의 재설계 요구로 이어지고 있으며, 주거를 ‘사회적 공공재’로 보는 접근도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결국 집의 개념을 ‘사는 곳’으로 재정의하는 일은 단지 개인의 인식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전체의 구조적 개혁과 직결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집은 사는 곳이다”라는 말은 감성적인 이상이 아니라, 이제는 경제적·사회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 안정성을 중시하는 구조로 가는 첫걸음이며, 정책과 시장, 개인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